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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베언의 우울이론 - Richard Rubens

마음사… 2013-11-25 (월) 14:04 4년전 792  
Fairbairn’s Theory of Depression

                                                                                                  -Richard L. Rubens, Ph.D.

 

페어베언은 모든 정신분석 이론을 뒤집는 endopsychic structure 이론을 발달시켰다. 그의 이론은 관계를 dirve 방출의 결과로 보는 대신에, 관계에서 자기-표현을 모든 심리 기능의 기초로 보았다. 성장을 발전적 구조화와 동의어로 보기 보다는, 자기의 구조를 본래 병리적인 분열과 억압 과정으로 이해했다. 본능의 변천에 대한 생물학적 이론 대신에, 애착 이론의 측면에서 건강한 발달과 정신병리 모두를 이해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정신분열증과 schizoid 상태의 특성 그리고 히스테리, 강박증, 공포증 그리고 편집증의 임상적 현상을 이해하는 독창적이고 기발한 방식을 발달시켰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페어베언은 우울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은 굉장히 중요하고도 보편적인 문제이며 더욱이 페어베언은 우리가 우울을 이해하는 데 간접적으로 많은 제안을 했다. 나는 페어베언이 우울에 관해 실제로 저술한 것을 요약하고, 가장 중요한 이 임상 실체에 대한 암묵적인 ‘페어베언학파’ 이론을 통해 그의 다른 기고문이 제시한 것을 조사하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페어베언은 공격성과 구강기 가학성이 우울 상태의 주요 문제들이라는 기존의 견해를 차용했다.

클라인은 두 가지 position 즉 paranoid position과 depressive position이 존재한다고 가정했다. 이 두 가지 발달 단계는 유아의 대상 관계의 두 가지 초기 단계를 정의했다. 그것들은 사람과의 관계를 특징짓는 상호작용의 근본 패턴들이었다.
페어베언은 dirve가 아니라 대상 관계에 근거한 발달 이론에서 이런 position 개념의 가능성을 분명하게 느꼈다. 또한 클라인의 개념으로 인해 그는 인격과 정신병리의 기원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떨어져 유아의 초기 1년으로 되돌아가 탐색하게 되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가장 중요하게, 페어베언이 클라인의 이런 이론적 출발에 근거하여 발달시킨 schizoid position 개념은 이후의 인간 발달을 이해하는데 중심적 요인이 되었다. 

 그는 구강기를 초기 구강기와 후기 구강기로 나누는 것을 받아들였다. 초기 구강기 동안에 대상 관계와 관련하여 일어나는 정서적 갈등은 ‘빨거나 빨지 않는 것’ 즉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이 번갈아 일어나는 형태를 띤다. 이것은 schizoid 상태의 기저에 있는 갈등이다. 다른 한편, 후기 구강기를 특징짓는 갈등은 ‘빨기 혹은 깨물기’ 즉 ‘사랑하기 혹은 증오하기’가 번갈아 일어나는 것으로 바뀐다. 이것은 우울 상태 기저에 있는 갈등이다. 따라서 schizoid 개인의 커다란 문제는 사랑에 파괴되지 않고서 어떻게 사랑하는가인 반면에 우울 개인의 커다란 문제는 증오에 파괴되지 않고 어떻게 사랑하는가 이다.

후기 구강기에 개인이 직면하는 커다란 문제는 증오로 대상을 파괴시키지 않고 어떻게 사랑하는가이다. 따라서 우울 반응은 후기 구강기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우울한 개인의 커다란 어려움을 이루고 있는 것은 사랑의 처리라기 보다는 증오의 처리이다. 이런 어려움이 위협적이긴 하지만 우울한 개인은 어쨌든 자신의 사랑이 나쁘다는 통렬한 느낌을 경험하지는 않는다. 그의 사랑은 좋은 것 같기 때문에 그는 외부의 대상들과 리비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선천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다(반면, schizoid는 그렇지 못하다). 그런 관계를 유지하는 데 느끼는 어려움은 그의 양가감정에서 생긴다. 이 양가감정은 다시, 그가 후기 구강기 동안에 대상의 단순한 거절을 직접적인 공격성(깨물기)으로 대체하는 데 있어 schizoid 보다 더 성공적이다. 그의 증오가 내재화된 대상을 향하게 될 때 우울 반응이 일어난다.

그는 1951년까지도 depressive position의 기본 견해를 되풀이했다. 환경이 우울 유형 개인의 대상 관계를 방해할 때, 우울은 그에게 증오와 공격성이 자기를 향해 내부로 향하게 되는 반응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런 우울 유형은, schizoid 심리내적 구조에서 발견되는 것과는 반대로, 기본 심리내적 구조가 후기 구강기의 양가감정에 기초해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클라인은 두 position의 개념이 정신의 두 가지 기본 조직을 나타낸다고 생각한 반면, 페어베언에게 position들은 동일하게 중요한 것 같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는 schizoid position을 훨씬 더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보았다. 결국 그는 자기 내부에 있는 분열된 하위 체계들이 존재하는 기본 상태를 나타내는 schizoid position이 인간의 모든 정신병리의 기본이 되는 position 이라고 결론짓는다. 
 
1944년이 시작되면서 페어베언은 “프로이트의 정신 구조 이론이 멜랑콜리 현상에 기초해있다”는 것을 바르게 이해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기초에 근거하여 프로이트가 기본 정신병리 개념을 대상 관계 이론에서 더 멀어지게 하고 오이디푸스 중심의 drive를 향하게 했다고 잘못  결론 내렸다.
 
페어베언은 초자아 이론이 프로이트가 정신 안에 적극적으로 기능하는 구조를 형성하면서 세상 속의 실제 사람들과의 경험 개념에 가장 가까이 가 있으며, 따라서 프로이트 이론 중에 대상과 관련된 무대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것은 또한 분명히 이후에 모든 대상 관계 이론들의 출발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어베언은 그것이 억압의 동기가 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schizoid 단계에서 애착에 근거한 훨씬 더 설득력있는 설명을 발달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페어베언은  “프로이트의 초자아 이론은 … 죄책감의 기원을 추적하고,  억압의 일반 근원을  오이디푸스 상황에서 찾으려는 시도를 나타내는” 방식에 반대했다.

페어베언은 클라인의 paranoid position 개념을 가져와서 그것이 본래 근거하고 있는 본능 이론과 떼어 놓고 자신의 schizoid position 개념으로 변형시켰다. 이 schizoid position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애착 상태의 유아가 견딜 수 없는 나쁜 경험을 하면서 불가피하게 자아 분열이 발생하게 될때 생기는 근본적인 병리적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Depressive position의 경우에, 페어베언은 우울과 공격적 drive의 연결 그리고 그것이 오이디푸스 죄책감과의 관련성을 근본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우울의 문제를 이런 초심리학적 개념과 떨어뜨려서 생각하기보다 그는 그런 관련성을 유지하면서 점차 흥미를 잃게 되었다. 
 
페어베언이 우울을 이런 drive-oedipal 구도와 떨어뜨렸더라면 그는 자신의 대상 관계 이론의 측면에서 우울이 맡고 있는 엄청난 역할에 대해 가장 분명하게 인식했을 것이다. 클라인의 depressive position 개념을 빼놓고 이런 이론적 근거에서 우울을 자유롭게 생각했더라면 정신병리에서 우울을 편재되어 있는 중요한 요소로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페어베언의 이론적 맥락에서 볼 때 우울을 정신의 발달 조직에서 position으로 이해할 필요가 없다고 제안한다. 또한 우울을 오이디푸스 죄책감과 혹은 공격적 본능의 측면에서 생각되는 내재화와 연결시킬 필요도 없다. 오히려 우울은 세계를 경험하는 폐쇄 체계에서 심리내적 상황과 상태를 보존하는 가장 일반적인 메커니즘으로 생각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이런 견해에서 우울은 변화의 존재를 회피하거나 부인하는 기술이다. 변화를 부인하고 그럼으로써 상실 경험을 부인하려는 욕망은 인간의 가장 깊은 저항 중 하나이다.
 
그가 우울은 중요한 정신분석 현상이 아니라고 주장하였지만 그는 계속해서 “임상 현장에서 ‘우울한’이라는 친숙한 용어는 허망감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 자주 적용되었다”고 기록하였다. 페어베언이 묘사하고 있는 허망감은 우리가 우울로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공격성이 방향을 수정한 것이나 오이디프스 죄책감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immobilization, 절망, 무기력 상태로서 내적 대상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사건 앞에서 절대적이고도 변함없이 자신의 내적 대상을 유지하려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개인의 무능력에서 기인한다. 다른 수준에서 그것은 내면 세계에서 어떤 변화도 부인하려는 일반적인 시도를 나타낸다.
 
우울에 대한 페어베언학파의 확장된 이해는 그의 과도기적 기법처럼, 우울이 발달 수준의 폭넓은 스펙트럼에 걸쳐서 기능할 수 있다는 견해를 분명히 허용한다. 또한 과도기적 기법처럼, 우울의 실제적인 발현은 발생하는 수준에 따라 다를 것이다. 페어베언은 후기 발달 단계에서 나타나는 우울과는 달리 schizoid 허망감에게서 뚜렷한 특질을 주목한 것은 옳았다. 강박과 히스테리 기법이 발달의 다양한 수준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우울의 개념을 다양한 발달 수준에 걸쳐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애도 과정과 우울 과정 사이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는 그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이해했다. 그는 애도 작업을 상실의 인식, 수용 그리고 궁극적으로 초월 작업으로 보았다. 그러나 우울에서 프로이트는 대상과 유대를 끊어내려고 하는지 아니면 유지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양가감정이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이 양가감정에서 drive에 기초하여 공격성을 강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훨씬 더 큰 차이를 알게 될 것이다. 슬픔은 상실에 대한 건강한 정서적 인식과 수용을 나타내는 반면, 우울은 상실을 부인하려는 신경증적 시도를 나타낸다.
 
삶의 과정 즉 성장과 변화의 과정은 지속적인 상실을 의미한다. 삶의 새로운 단계로 이동하는 것은 항상 이전의 발달 수준을 버리는 것이 포함된다. 인간의 경험의 더 높은 통합을 이루어내는 것은 항상 이전의 통합을 포기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런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은 페어베언이 열린 체계 방식으로 삶이라 부른 것이다.
 
정신병리는 폐쇄된 체계에서 살려는 시도를 나타낸다는 것이 페어베언의 기본 개념인데, 그런 폐쇄 체계를 유지하는 것은 다양한 자가-구조들과 그것들 각각의 내적 대상들 사이의 일반적인 관계의 영속화를 포함하고 있다.
 
페어베언은 자기 안에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은 자기의 분열된 하위 체계가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런 자기의 분열된 하위체계는 억압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며, 자기가 견딜 수 없는 어떤 중요한 경험을 다루어내지 못하는 무능력 때문에 존재하게 된다는 개념에 도달했다. 그는 그런 구조들을 형성하는 과정을 “schizoid”라 칭했다. 자기의 이런 하위 체계들은 정신 안에서 확고해지고 폐쇄된 체계로 유지된다.
우울이 현실에서 지원할 수 없는 애착을 유지하는 것이 그 목적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페어베언의 폐쇄 체계의 전체 개념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개념이다. 따라서 우울은 내적 세계에 위협을 가하는 상실-혹은 변화-에 대해 경험하는 어떤 것이 된다. 폐쇄 체계의 기대와 일치하지 않는 어떤 변화도 우울을 촉진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변화는 내면의 현상 유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위협하기 때문이다. 
페어베언은 “환자의 내적 세계가 폐쇄체계로 유지되는 것은 … 저항의 가장 큰 근원”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 변화를 회피하거나 부인하려는 방어적 반응은 우울로서 이해된다. 그것은 내적 대상 상실 위협에 대한 정서적 반응(과 그런 대상들과 관련된 자기 상실의 공포)을 묘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런 반응의 적극적인 저항 동기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견해에서 우울은 이런 폐쇄 체계의 상태를 유지하고자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방어이다.

 우울해지는 것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 절망적이고 무력하고 무능하게 느끼는 것이다. 그 경험은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하는 무능함, 일어나는 일 앞에서 무력해지고 따라서 상실을 다룰 수 있다는-혹은 살아낼 수 있다는- 어떤 희망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울은 점차 완전한 심리적 (혹은 때때로 신체적) immobilization에 도달하고 이때 어떤 의미있는 행동도 – 혹은 지속되는 삶 조차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우울한 사람은 자신이 경험하는 상실에 너무 압도되어 그것을 해결하기를 거절하면서 경험 속에 갇힌다. 그런 반응은 실제 상실을 수용하는 것에서 꼭 생기는 내적 상태의 변화를 어떤 식으로든 수용하지 못하고 이전의 내적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현실을 부인하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애도(혹은 내가 여기서 사용하는 용어인 슬픔)는 상실의 수용을 포함하는 반면, 우울은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해결을 방해한다.
이런 견해에서 슬픔과 우울 사이의 반비례가 있다. 슬픔을 경험할 수 있는 한 우울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우울해지는 한 슬픔을 경험할 수 없다. 슬픔이 상실을 수용하는 것에 대한 반응인 반면에 우울은 항상 상실을 부인한다. 임상적으로 유사해보이지만 전혀 다른 이 두 상태들을 구별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분석이 어떤 구조적 변화가 발생하는 과정에 도달했을 때, 환자는 그 변화를 제압하거나 부인하는 우울 방어에 의지하는 것 같다는 점이 명백하다. 임상적으로 치료에서 혹은 환자의 다른 삶의 영역에서 어떤 특정한 진전에 대한 방어로서 이런 우울 기제를 인식하는 것은 방어가 작동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게 하기 때문에 굉장히 유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가장 긍정적인 치료 발달은 우울 - 결국, 임박한 변화에 대한 저항을 나타내는- 의 출현이 아니라, 변화를 실제로 받아들이는 슬픔의 출현이다. 왜냐하면 슬픔은 그 자체 안에 궁극적인 해결 가능성을 담고 있는 반면, 우울은 해결을 거부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페어베언은 보다 개방되고 건강하게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내적 나쁜 대상에 대한 애착-일차적 동일시 단계의 절대적 의존상태에서 시작된-이라고 주장했다. 프로이트는 “Mourning and Melancholia”에서 우울 성향을 갖게 되는 것은 대상 선택의 자기애적 요인들이라고 결론지었다. 두 사람 모두 슬픔과 상실을 경험하지 못하는 인간의 무능력은 인간의 내적 대상과 원초적인 수준에서 연결되어 있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그런 연결은 상실을 허용하게 되면 대상과 밀접히 관련된 자기의 그 부분이 상실될 것이라는 위협을 수반하게 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두 사람 모두 우울한 사람이 자기의 그런 상실을 회피하기 위해서 그런 상실 가능성을 부인할 수 있는 내면 세계로 후퇴한다는 것을 알았다.

프로이트의 우울 이론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대상 관계 지향적 사고와 연결하는 대신에, 페에버언은 욕동이론 그리고 그것과 연결된 외디팔 오리엔테이션과의 차이를 강조하였다. 불행하게도 그가 이런 측면을 우울 이론에서 성공적으로 분리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여기서 논의되는 가능성과 연결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초자아 죄책감”과 공격성의 수준에서 생각되는 우울 이론에 대한 페어베언의 공헌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페어베언은 대상에 대한 분노가 우울에서 자기를 향해 공격성으로 내부로 향하게 되는 방식을 아주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의 이론은 이런 현상을 두 가지 수준에서 설명하였다. 가장 깊은 수준에서 그것은 자신의 대상들의 “좋음”과 사용가능성을 보존하기 위해 아이가 어떻게 그들의 견딜 수 없는 나쁨과 동일시하고 그것을 본받는지 설명하였다. 성적으로 학대받은 아동들에 대한 관찰을 통해, 페어베언은 그들이 자신들의 분노와 부정적인 비난을, 더 적합한 대상들(불행하게도 그들이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에게 향하기보다는 어떻게 자신들에게로 향하게 하는지 묘사하였다. 이런 지점에서 그는 상실을 회피하고 부인하려는 우울의 보수적인 역할을 암묵적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이런 작용이 schizoid 수준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은 그것이 우울이라는 인식을 방해했는데 이는 우울이란 용어는 후기에 작용하는 것에만 적용된다는 그의 고집 때문이었다.

페어베언은 이런 작용이 우울과 보다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으로 이해한 후기 발달에서 moral defense 개념을 발달시켰다. moral defense는 ‘슬픈’ 보다는 ‘나쁜’ 감정의 이런 전략을 재가동시킨다. 그렇게 하면서 조건적 나쁨의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견딜 수 없는 나쁨의 위험과 거리를 넓힌다. 무조건적인 나쁨(사랑하는 애착 그자체가 파괴적으로 보이는 상태)를 다루는 대신에 아동은 조건적 나쁨 혹은 도덕적 나쁨의 개념을 발달시키고 그것은 그에게 덜 무서운 수준에서 작용하도록 한다. 그때 자신을 도덕적으로 나쁘게 대함-불쾌한 상황-으로써 부모의 좋음의 상실을 회피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나쁘고 따라서 구제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쁘게 생각해야 할 만큼 무섭지는 않다. 도덕적 방어 수준에서 페어베언은 우울은 내면의 심리내적 상황을 보존하고 그것의 결점을 보다 직접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것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기insulating 위한 기법으로 이해하였다. 

이 시점에서, 출현하는 우울 이론의 관점에서 신경증적 죄책감을 다시 고려하는 것은 임상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진정한 도덕적 죄책감은 인간 기능의 굉장히 성숙하고 건강한 측면이다.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 것에 대한 이해에 반하여 지은 범죄에 대해 깊이 후회할 수 있는 능력은 최고의 발달적 성취이다. 그러나 이런 능력은 죄책감의 신경증적 표현과는 매우 다르다. 신경증적 죄책감의 표현은 변화하지 않고 현상을 유지하고자 의도된 자기-채찍(즉 자기에게로 항하는 공격성)의 수단을 나타낸다.

 요컨대, 페어베언이 모든 정신병리의 근간으로 이해하게 된 근본적인 schizoid 기제와 경쟁적 역할을 우울에게 부여했던 초심리학적 가정을 받아들인 것은 가장 불행한 일이었다. 그 결과, 페어베언은 우울이 대상 추구와 적극적인 애착이라는 자신의 기본적인 설명적 패러다임과 동떨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이런 빛에서 우울을 이해하는데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없었다.

나는 여기서 심리 기능에 대한 페어베언의 일반적 접근에 근거하여 우울이론을 발달시키고자 했다. 이는 우울을 상실이나 변화의 인식에 반하는 반응으로 생각하는 이론이다. 이런 견해에서 우울은 항상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애착을 보호하고 있는 내면 세계의 폐쇄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작동한다. 페어베언이 보여주었듯이, 이런 내면 세계의 구조는 자아 분열 과정과 억압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지만, 우울은 외부 세계에서 살아가는 경험의 일부인 상실과 변화에서 만들어진 폐쇄된 세계를 격리시켜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우울은 인간의 생기와 효율성 그리고 살려는 의지까지 공격하여 내면 세계가 변화시킬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에 변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안심시키려는 관성의 느낌과 정지 상태의 감각을 강화하고자 한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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